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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Jina Oh

에로틱하지만 아름답고, 상투적이지만 재미있는... <장미의 기사 Der Rosenkavalier>

이 글은 월간 <객석> 2019년 11월 호에 실린 오페라 리뷰입니다. 현재 전국 서점에서 절찬리 판매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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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 시즌을 맞아 본(Bonn)극장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첫 프리미에(개막공연)는 바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다. 음악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작품일 뿐만 아니라 고어와 프랑스어까지 뒤섞여 있는 방대한 가사로, 자막이 있어도 독일인조차 다 이해하지 못할 정도다. 노련한 연출가와 실력 있는 오케스트라, 그리고 가수들이 아니면 자칫 산으로 갈 수 있는 오페라다. 그래서 ‘장미의 기사’를 올린다는 자체가 그 극장의 자부심을 드러낸다고 봐도 무방하다. 본 극장은 이 프로덕션을 12월 말까지 계속 선보일 예정이다.


구 서독의 수도이자, 대표적인 대학 도시인 본은 라인강 유역의 카니발을 즐기는 여타 도시들이 그렇듯이 개방적이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이 극장에서 여러 차례 공연을 관람하며 느끼는 것은 관객층이 남녀노소 다양하고 모두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매번 극장과 관객의 유대감이 끈끈하다는 인상을 준다. 이번 ‘장미의 기사’ 공연에서도 관객들은 출연진의 노고에 아낌없는 환호와 갈채로 화답했다.


요제프 에른스트 쾨플링어의 연출은 대성공이었다. 오스트리아 인으로 현재 뮌헨 가르트너플라츠 국립극장의 극장장인 이 관록의 연출가는 자칫 통속적이고 상투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우아하면서도 재치 있게 이끌어갔다. 특히나 오페라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에 저마다의 캐릭터과 스토리를 부여해서 극 전반에 다채로운 색깔을 더했다. 무대 위에서 진수성찬이 결코 산만하지 않았던 것은, 연출가가 강약 조절에 능수능란한 덕이 아니었을까. 애초에 이 오페라의 대본을 썼던 후고 폰 호프만스탈이 슈트라우스와 작업할 때 “Prima la musica (음악 우선)”라고 양보한 것처럼, 이번 프로덕션도 음악 위의 큰 그림을 그렸던 연출 덕에 두번의 휴식 시간을 포함한 4시간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람할 수 있었다.


위: 마르티나 벨쉔바흐 (마르샬린), 아래: 엠마 스벤텔리우스 (옥타비안) ⓒThilo Beu / Theater Bonn

디르크 카프탄이 이끄는 오케스트라는 변수가 많은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매끄럽게 펼쳤고, 가수와 하나되어 조화롭게 흘렀다. 그리고 적절한 캐스팅은 그야말로 가수가 배역 그 자체인 듯한 모습을 보여줬기에 성공적인 공연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바그너 등 독일 레퍼토리를 전문으로 노래하는 소프라노 마르티나 벨쉔바흐는 아름답고, 기품 있는 마르샬린을 보여줬고, 세계 정상급 무대에서 이미 옥스 남작 역을 누차 부른 바 있는 프란츠 하블라타는 미워할 수 없는 호색한 캐릭터를 훌륭하게 표현했다. 이런 중견가수들의 탄탄한 안정감 위에 신인 성악가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는데, 소피 역의 루이즈 케멘니는 17살 소녀의 발랄함과 떨림을 잘 표현했다. 다만, 노래할 때, 아래턱이 많이 떨리고, 고음부가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정확한 딕션과 배역과 혼연일체된 연기를 보여줘서 앞으로 발전이 기대됐다. ‘장미의 기사’의 또 다른 주역인 옥타비안은 스웨덴 메조소프라노 엠마 스벤텔리우스가 맡아 역할에 잘 맞아떨어지는 완벽한 외모와 가창을 보여줬다. 가끔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이 바지 역할(여자 성악가가 남자 역할을 맡는 것)을 잘 해냈기에, 이 젊은 메조소프라노가 이번 시즌에 이 극장에 부르는 또 하나의 유명한 바지 역할인 케루비노(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를 어떻게 표현할지 기대된다. 3막에 여관주인 역으로 출연해서 출중한 가창을 보여준 한국인 테너 유종훈을 발견한 것도 또 하나의 기쁨이었다. 


3막의 아름다운 3중창이 마치고 닫혀 있던 무대가 열리면서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새로운 사랑을 찾은 소피와 옥타비안은 눈을 맞으며 환호하며 행복해한다. 하지만 1막 마르샬린의 독백 중에 그녀가 나이 들어가는 것에 씁쓸해하며, “거울 속의 내게 지난 세월의 눈이 내린 것이 보이네” 라고 노래한 것을 들었던 관객들은 17살의 소피와 옥타비안 위에도 어김없이 내리는 눈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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